김민정 기자 lifetree81@hanmail.net
여성의 눈으로 보고, 여성의 마음으로, 여성이 만드는’ 영화를 소개한다.
여성을 여성의 눈으로 스크린에 담은 제12회 청주여성영화제가 29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1층 에듀피아 상영관에서 열린다.
청주YWCA여성종합상담소가 주최하는 청주여성영화제는 매년 4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출품되었던 작품 중 호평 받은 단편과 중편, 장편 영화 4~7편 정도를 섭외해 상영하는 방식으로 개최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오전 10시 개막작 상영을 시작으로 오후 9시 폐회하는 단 하루의 행사로 축소됐다.
개막작으로는 다큐멘터리 ‘땅의 여자’가 선정됐다. 2009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오후 8시10분에는 권우정 감독을 초청해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권우정 감독은 현재 서강대 영상대학원 영상미디어학과에 재학중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VJ학교를 수료하고 ‘다큐인’에 들어가 주로 농촌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2004년 ‘농가일기’를 연출,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선보였고 제9회 인권영화제에서 올해의 인권영화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의 여성농민 부분을 연출,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에 언급된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 ‘땅의 여자’와 관련해 땅과 여자를 주제로 지역 귀농여성과 여성농촌운동가를 토론자로 초청해 심도있는 토론회를 오전 11시45분부터 마련한다. 또 장편으로 ‘엄마를 돌봐줘’(오후 2시)를 시작으로, 오후 3시부터 단편 △나를 믿어줘 △그 후 △끼니 △경주여행 △파마 △위태로운 삶:중국인 묘지 등 5편이 상영된다. 무료. (☏043-268-3007)
▶땅의 여자
대학때부터 농민 운동가를 꿈꿔온 강선희, 캠퍼스 커플인 남편을 따라 농촌에 정착한 변은주, 농활을 통해 땀 흘려 일하는 모습에 흠뻑 반한 부잣집 막내딸 소희주. 대학동창인 세 여자는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왔다. 농사를 지으며 희고 곱던 손은 볕에 그을린 채 거칠어 갔고, 그들의 현실은 팍팍한 농민의 삶에다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살아가야하는 여성의 삶이 무겁게 더해진다. 영화는 이 땅에서 여전히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두 이름, 여성과 농민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일년여의 행보를 기록했다.
▶엄마를 돌봐줘
남편과 함께 평생을 의사로 활동하면서 다섯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진. 그녀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이제 쓰러져가는 육체와 점점 흩어져가는 정신 속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고 있다. 진의 두 딸은 어머니를 가까이 모시기 위해 그녀를 암스테르담으로 이사시키지만, 노화가 진행될수록 일상과 어머니 돌보기를 병행하는 일은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한때는 세상의 전부였던 어머니가 조금씩 작아지는 과정, 그리고 그녀를 떠나보내는 과정을 담담히 담아내는 이 영화는 ‘모성’이라는 이야기는 어머니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딸들의 이야기임도 잔잔히 펼쳐보인다.
▶나를 믿어줘
대학생인 정화는 고등학교때 친구인 유미와 오랜만에 여행을 가게 되어 기대에 부푼다. 그러나 정화는 곧 유미가 다단계에 자신을 끌어들이려고 여행을 빌미로 거짓말을 했음을 알게 된다. 정화는 상처를 받았음을 드러내며 유미의 우정을 의심하고 그녀를 질책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위선을 마주하게 된다.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은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정작 자신이 다른 사람을 짓밟고 서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현 젊은 세대의 위선적인 위치를 치밀하게 구조화시키며 관객에게 뜨끔한 성찰의 순간을 제공한다.
▶그 후
평범한 여고생 은수는 늦은 밤 귀갓길에서 선생님에게 사고가 났다며 자신을 차에 태우려는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된다. 차에 타려던 순간 직감적으로 이상하다 느낀 은수는 도망치지만, 그 후 은수의 일상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성범죄 사건은 모든 여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그 여자는 내가 될 수도 있기엡. 영화는 여자들이 성폭행 사건에서 느끼는 공포와 복잡한 심리를 놀랍도록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끼니
부엌에 선 여자가 전을 부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밀가루 옷을 입혀 노릇하게 전을 굽는 동안 여자는 식구들 끼니도 여러 번 차려낸다. 모두 잠든 밤, 여자는 여전히 부엌에 서 있다. 낮에 부친 전을 소반에 얹어 작은 제사상을 차린다. 망자를 위한 끼니를 앞에 놓고 혼자만의 의례를 치르고 나서 혼자 먹는 늦은 저녁밥. 그리고 얼마 후 날이 밝는다. 다시 부엌엔 누군가의 끼니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세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불합리한 노동을 두고 투덜거리는 대신 시동생의 입을 빌어 조소어린 한마디를 던진다. ‘우리 형수는 천사’라고. 때론 담담하고 섬세한 묘사가 힘찬 구호보다 더 설득력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경주여행
엉뚱하고 귀여운 주인공 효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길.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경주행 기차에서 만난 ‘취객’의 장광설에 무너져 내리고, 애써 찾아간 전시회는 ‘금일휴업’ 상태다. 그래도 효재는 포기하지 않고 길을 계속 간다. 수학여행 때 묵었던 숙소도 돌아보고, 경주 인근 바닷가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도 태운다. 그렇게 노닥거리다가 돌아가는 버스를 놓쳐버린 효재 앞에 드디어 누군가가 나타나는데….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